산으로 가는 길

[스크랩] 너에게로 가는 나홀로 산행..천보산과 칠봉산산행

새벽반달 2014. 6. 10. 09:15

▒ 너에게로 가는 나홀로 산행..천보산과 칠봉산산행

         회암사지와 회암사를 경유하여.. - 2014/02/23 -

 

 

회암사지(檜巖寺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회암사의 절터이다.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로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보우선사의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에 의해

1313년(충숙왕 즉위) 이전에 이미 절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26년 고려에 온 인도 승려 지공

(指空)이 천력연간(1328~29)에 회암사의 절터를 측량했다는 기록으로 인해 지공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1376년(우왕 2) 지공의 제자인 나옹(懶翁)이 삼산양수지기(三山兩水之記)의 비기(秘記)에서 이곳은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와 지형이 같으므로 가람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흥한다고 하여 이 절을 중창했다. 한편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퇴위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은 대가람이었으며, 1424년(세종 6)에 행해진 선교양종(禪敎兩宗)

폐합 때의 기록으로도 그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472년(성종 3)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명으로 정현조(鄭顯祖)가 중창했고,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비호로 다시

전국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

 


왕후가 죽은 뒤 유생들의 탄핵으로 보우가 처형되고 절도 황폐해졌다. 선조 때까지는 기록에 간간이 절의

이름이 보이지만 1818년 재건한 무학대사비에는 폐사되었다고 하므로 선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옛 절터 부근에는 1977년 중건한 대웅전·삼성각·영성각(影聖閣) 등이 있다.

 


절터에는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보물 제387호)·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나옹

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무학대사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부도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남아 있다.

 

 

회암사지와 회암사로 인하여 오래전부터 등산객들에게 인기 산행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양주시와 동두천시에

걸처있는 천보산과 칠봉산으로 갔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손쉽게 하루산행으로 다녀 오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덕정역에 내려 1번 출구쪽 우측에 있는 버스 정유소에서 10~15분 마다 운행하는 78번 미니버스를 타고

회암사지 입구에서 내려 안내판을 따라 가면 된다.

 

 

산행도 좋지만 이 코스에서는 최근에 개장한 회암사지 박물관 관람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입장료 1,000원이

결코 비싸지 않은 회암사지 박물관에는 여러가지 문화유적 자료들이 수두룩하였다. 우선 몇가지만 인증하였다.

 

봉화문 기와                                                                연화문 기와

 

 

왕실용 음각명 백자편                                                  용두

 

 

청기와                                                                       토수

 

회암사지 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과 특별 전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관람했으면 좋으련만

오늘 집에서 늦게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어서 자세한 박물관 관람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수박겉핥기식 관람만 하고 산행길에 올랐다.

 

 

회암사지 박물관에서 회암사지터로 가는 길은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회암사지터이다. 멀리 천보산(오른쪽)과 칠봉산(왼쪽)이 보인다.
 

 

1997년부터 발굴하기 시작한 회암사지터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황량한 벌판에 3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당간지주..

 

 

회암사지 발굴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 회암사 조감도..

 

 

지나온 회암자시터를 뒤돌아 보며..

 

 

회암사로 가는 길에.. 자동차길로 가지 않고 김삿갓 풍류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다.

 

 

계속 김삿갓 둘레길을 따라 올라가면 여러기의 국보급 부도비와 석등을 만나게 된다.

 

 

무학대사 부도비 및 석등이다.

 

 

지공선사 부도비 및 석등이다.

 

 

나옹선사 부도비와 석등이다.

 

 

고즈넋한 산사다운 회암사 대웅보전 전경이다. 회암사는 조선시대 성종 3년(1473) 정희왕후(貞喜王后)가

정현조(鄭顯組)에게 명하여 중창케 하였고 명종 때 문정왕후 섭정 당시 보우(普雨)가 회암사를 중심으로

불교 중흥을 기도하다가 문정왕후 서거 후 명종 20년(1565) 보우가 잡혀가고 절은 불태워졌고
순조 21년(1821) 폐사되었는데, 경기 지역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회암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며 내려다 본 회암사 전경이다.

 

 

산을 오르면서 회암사를 내려다 보면 이곳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자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다.

 

 

가파른 바위길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급경사 바위길을 올라서면 암벽에 노송들이 동양화의 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는 아래쪽에 회암사가 보인다.

 

 

모진 세월과 억세게 부디치며 살아 온 노송 한 그루..

 

 

결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듯 한 노송 한 그루..

 

 

노송과 암벽 사이로 살짝 보이는 회암사..

 

 

천보산 최고의 전망대인 이곳 암봉은 기기묘묘한 노송들이 그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개발이 한창인 양주시가지가 한눈에 조망되고 멀리 북한산 자락도 지척거리로 조망되는 곳인데..

 

 

업어지면 코닿는 곳에 있는 천보산(天寶山:423m) 정상으로 갔다. 천보산에는 세가지 유래가 전해 지고 있다.

그 첫번째 설은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 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산이라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을 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는 구하기 어렵고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설로는 옛날 전쟁중에 천보라는 공주가 적장에게 납치되어 현재 천보산까지 끌려오기까지 고국의

부왕과어마 마마만을 생각하고 음식을 거절하다가 이 산에서 죽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세번째 설로는 천보산(天寶山:423m) 어디엔가 하늘의 보물이 묻혔다고 해서 천보산이라고 한다는데..
마음으로 찾는다면 어디엔가 그 보물이 있을 것이다.

 

 

천보산의 실질적 정상인 제 5보루이다.

 

 

천보산 정상에서 왕방산를 찍사를 해 보았다.

 

 

이번에는 축석령방향으로 조망해 보았다. 오늘은 연무현상과 미세먼지까지 합세하여 먼 거리 조망은 꽝이다.

 

 

천보산과 칠봉산은 MTB(산악자전거) 코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보니 대한민국은 산에 자전거길까지 만들어 줄 정도의 부자나라였다.

 

 

천보산과 칠봉산을 연결하는 이 장림고개에는 MTB(산악 자전거)를 위하여 연육교도 설치되어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MTB(산악자전거) 꾼들이 오늘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장림고개 마루에 있는 카페.. 조금 일찍 산행을 했더라면 저곳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는 건데..^^

 

 

장림고개에서 칠봉산으로 가다보니 어느 산객이 소망해 놓은 돌탑이다. 무슨 소망을 했을까..?

 

 

칠봉산 정상가기 전의 솔리봉(수리봉)이라고 한다.

 

 

솔리봉(수리봉)을 설명한 간판인데..좀 제대로 된 설명을 했으면 좋겠다. 정독을 해 보아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잠시 일탈을 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몇 개의 보물들이 보였다. 땅이 꽁꽁 얼어서 눈요기만 했다.

 

 

암봉을 지나..

 

 

칠봉산(七峰山:506m)의 유래는 내촌동 뒷산에서 보면 일곱 봉우리가 뚜렷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9~10월경에는 아름다운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 있어 금병산(錦屛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어등산(於等山)으로 불렀으며, 대한제국기를 전후로 칠봉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

 


회암사의 진산인 천보산은 이 칠봉산의 한줄기로 이 산이름에 시대적으로 다른 유래가 전해진다. 어등산의

한자는'어등산(於等山)'이외에도'어등산(御登山)'으로도 불려지며, 이와 관련하여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 많은 신하를 참형에 처한 것을 후회하여 널리 사찰을 찾아 다니다가, 탑동에 위치한
상봉(上峰)을 국사봉(國射峰)으로 정하고 이 산을 지나갔기 때문에 어등산(御登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 칠봉산 정상에 본 국사봉(중앙에 흐리게 보임)
또는 세조가 이 산에서 내촌(內村)마을을 보고 신하들에게 저 마을은 무슨 마을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세조가 "앞에는 산이 있고 회암천(檜岩川)이 흐르는데다가 뒤에 또 산이 있으니
'안말' 이겠군"이라고 한후 '안골'로 불리다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내촌(內村)으로 불렸다고 한다.

 

                                                                                                    ↑ 칠봉산 정상에서 본 왕방산(흐린 중앙)
그러나 후에 임금이 이곳에 직접 왔을리 없다 하여 어등산(於等山)으로 억지 개명하려 하였는데,
마을의 원로들이 크게 반발하여 산봉우리가 칠봉(七峰)이니 칠봉산(七峰山)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하여
칠봉산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전기에는 이곳 주변이 임금의 수렵장소로 자주 이용되었으므로,
'임금이 오른 산'이라는 뜻에서 어등산(御登山)이란 이름이 함께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칠봉산 정상에서 본 천보산 전경
칠봉산에 있는 일곱 봉우리의 땅 이름 유래는 다음과 같다.

①임금이 처음 등산하기 위해 떠난 곳이라 하여 발리봉(發離峯)

②임금이 수렵에 필요한 매를 날렸던 곳이라 하여 응봉(鷹峯)

③임금이 수렵하러 나가 수렵표시 깃발을 꽂았다가 하여 깃대봉(旗臺峯)

④임금이 이곳에 쉬니 시위(侍衛)군사가 갑옷투구를 풀어놓았다하여 투구봉(鬪具峯)

⑤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날 준비를 하던 곳이라 하여 솔리봉(率離峯)

⑥임금이 떠나며 돌이 많으니 뜻하지 않은 일에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하여 돌봉(突峯)

⑦임금이 돌이 많다고 말한 곳이라 하여 석봉(石峯)

 

 

진달래바위라고 해서 유심히 보았더니 쪼개진 바위틈 사이에 진달래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말봉이라고 한다.

 

 

말봉을 측면서 보았을 때..

 

 

칠봉산에는 이런 밴취가 여러곳에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헬기장을 지나고..

 

 

투구봉도 지나고..

 

 

석봉 밴취에서 잠시 쉬었다가..

 

 

칠봉정자를 지나..

 

 

깃대봉에서 잠시 망설였다. 왼쪽 독수리봉쪽으로 갈까 하다가 오른쪽 재생병원쪽으로 하여 지행역으로 바로

하산하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하철을 이용하여 쉽게 집으로 갈 수 있으므로..

 

 

허걱~! 이 시간에 산으로 뛰어 오는 사람을 만났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산악마라톤 연습을 하는 사람 같았다.

멋있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무언의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스처지나갔다.

 

 

오래된 토치카 위에 물푸레나무가 자라고 있다. 오규원 詩 중에 [한잎의 여자]가 생각났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 영혼
그 한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 듯한 그 한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가진 여자
눈물같은 여자 슬픔같은 여자
병신같은 여자 시집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수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잎의 여자 / 오규원

 

 

동양 최대의 규모라 자부하던 동두천에 위치한 재생병원..이 건물을 무슨 연유에서인지 완공한지는

거이 10년이 넘도록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어 먼거리에서 보아도 폐가처럼 보인다.

 

 

재생병원 왼쪽 산줄기를 따라 지행동 동양아파트 신축건물과 지향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하산을 하였다.

 

 

지행초등학교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지행역까지 걸었다. 회암사지를 출발하여 약 4시간만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근교산행지로 강력 추천한다. 아마도 꽃 피는 봄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빌 것 같으니 참작하기 바란다.

 

 

2014/02/24 - 휘뚜루 -

한오백년 / 조용필

 

☞ 칠봉산과 천보산 개념도

출처 : 산으로, 그리고 또 산으로..
글쓴이 : 휘뚜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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