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 문학동네 (2008년 7월)
1권
20. 그렇게 큰 사건이었는데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기억마저 희미해졌다.
21.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선언은 다르다.
49. 이 사람은 이렇게 정에 치우치는 면이 있었구나, 하고 시게코는 생각했다. 나쁜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위험하다.
85. 이런 사건이 났을 때는, 딱히 취재기자나 리포터들을 도와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도 제발로 나서서 수다를 떠는 이웃 주민들이 있게 마련이다. 갑자기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그런 취재 대상은 매스컴 입장에선 고마운 존재다.
112. 마음씨 좋고 쉽사리 당황하는 부인에게는 ‘편하신 대로’나 ‘아무거나 좋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호의는 사양 말고 받아들이고, ‘이게 좋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하는 편이 좋다.
129. 아무리 유례없는 사건이라 해도 세간의 관심이 몇 년씩 계속 되지는 않는다. 공판이 열리면 보도되긴 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그 비중은 점점 낮아져 갔다.
134. 무능하지도 않다. 판단력도 있다. 다만 A와 B가 있고 B와 C가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제 각각 연결되어 있을 때 A와 C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166. “인간은 때론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는 동물이죠.” ~~ “보통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경우가 있어요. ~~~
166. “싫으면 그만두면 돼요. 누구에게도 구애받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인 것은, 이 히토시란 아이가 마에하타 씨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건드려서, 그것을 일깨웠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85. “ ~~ 열심히 일하는 성격은 아니었죠. 단숨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일만 생각했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꼬임에 잘 넘어가잖아요? ~~ ”
189. 취재 때문에 만난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은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주위에 있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227. 생각도 있고, 세상 물정도 아는, 합리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엿한 어른들이 그런 단순한 현상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내 이야기를 짜 맞춰 피를 나눈 사람을 멀리하는 일도 있다.
258. “안다는 것과 아는 걸 표현한다는 건 다른 문제니까.”
270. “그림자 같았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를 분위기였죠. 늘 조용했으니까. ~~ ”
315. 말이란 공허하다. 믿어주지 않으면, 마음에 가 닿지 않으면 그저 소리에 불과하니까.
325. 남자란 주위의 젊은 미인을 내버려두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은 자기 처지까지도 잊고 마는 동물이다.
355. 하지만 소문이란 건 살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제 발로 퍼져나갈 길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380. 과거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그 도주는 끝날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서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386. 한 사람의 인생이 바깥으로부터 붕괴되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노모토 형사는 말했다. ~~
그런 붕괴는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되는 것이다. 계속, 쉬지 않고 무너져간다.
421. 소문이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어 빙빙 돌면서 살이 붙어간다.
426. 마음만 먹으면 인간은 상당히 지독해질 수 있는 법이다.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시게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427. 이미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 아니라 한없이 검정에 가까운 회색이다.
427. 문제교사 폭탄 돌리기, 학교 단위의 손수건 돌리기다.
428. 더러운 것도 실제로 보지 않으면 더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옛날 사람들 말이 옳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이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435.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영상은 보인다. 지식은 부족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2권
24. 이 사람은 신자다. 신자에게는 아무리 조리 있게 설명한다 해도, 교리에 대한 의문으로 여겨질 말은 마이너스밖에 가져오지 못한다.
59. 경계할 필요가 없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죄의식을 지닌 사람은 쫓기지 않아도 도망친다.
93. 솜씨가 서툰 마술사의 클로즈업 매직 같은 것이다. 정면에서 보는 관객들은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에겐 그 속임수가 보인다.
120. 제3자에게 절대적인 우위에 서서 그 생살여탈권을 쥐고 지배하는 행위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의외로 강하게 움직여, 다른 행위에서는 얻기 힘든 절대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시게코는 다름 아닌 9년 전의 연쇄유괴살인사건 범인에게서 배웠다. 범인은 그런 종류의 만족감, 전지전능한 신이 된 느낌을 탐닉하는 중독환자였고 그래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납치해 죽였던 것이다.
121.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부분이 있다. 일단 인간의 길에서 벗어나 이 전지전능함을 맛보면 그칠 수가 없게 된다.
171. 오늘은 ‘말끔하게’ 보일 절실한 필요가 있는 만남이라 이렇게 차려입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말끔한 복장이라면 곧 양복과 넥타이라는, 이 나라의 성인 남성 90퍼센트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그대로 체현한 사람이다.
241. 부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게다가 잔뜩 부풀어 오른 경제사회의 환상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직종도 아니었다. 도이자키 집안은 높은 금ㄹ로 재미를 보는 부자도 아니었고,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기와도 인연이 없었다.
241. 자기에게 그런 인생밖에 주지 못한 부모에게 분노와 경멸의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것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춘기에 거치는 과정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고, 자신이 놓인 위치에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것 때문에 누구나 괴로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을 위한 양식이 되기도 한다.
242. 그런 자신의 어리석음을, 낭비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를, 시간을 낭비하기는 너무도 쉽다.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 엄청난 금리에 놀라는 것이다.
357. 여형사의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시게코는 가슴에 밀려왔던 파도가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타이밍을 놓쳤다. ~~~ 이 이야기를 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59.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데는 보통 한계나 치우침이 있게 마련이다. ~~ 좀 더 연약한 인상의 여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360. 편지를 쓸 때, 망설이다 전화번호를 쓰지 않았다. 주소만 썼다. 도이자키 부부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혹은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370. 아카네는 왜 전부 말한 걸까 ~~~ 부모를 얕잡아보고, 반항했는데. ~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날 밤의 체험은 아카네에게 비정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384. 누군가를 잘라내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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