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 문학동네 (2012년 3월)
1-328. 토막살인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지탱하고 있는 광고는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젊은 여성의 영상뿐 이었다. 어쩌면 그런 영상들이 어떤유의 위험한 상상력을 가진 인간의 마음에 강한 자극을 주는 게 아닐까. 광고속에 난무하는 젊은 여성들의 화려한 모습이 그 상품의 선전이 아닌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는 그냥 장난감이라고,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고, 붙잡아도, 죽여도, 땅에 묻어도,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는 장난감이라고..... 마리코를 죽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저런 메시지를 받아들인 인간이 아닐까.... 그런 메시지를 보낸 다른 누군가 대문에 마리코가 불려나간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 이런 광란을 멈출까?
1-471. 건강하고 상식적인 보통의 남자가 건강하고 상식적인 보통의 여자와 만났을 때 이 여자와 언제 잘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히로미에게는 그 당연한 열정 이상의 것은 없었다.
2-00. 어른 이라면 가출을 한다 해도 단순히 배가 항구를 떠나 다른 항구로 가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디를 표류하고 있다 한들 직업이나 세금이나 국민보험 같은 여러가지 무선주파수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회라는 대륙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성년자일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가정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는 것은 아예 배를 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존재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2-00. 차라리 잘 됐다고 안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김이 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이중성이 혐오스러웠다.
2-00.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
2-35. 또래의 젊은 여자들과 그 부모들에게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처할 방법이 없는 공포였다. 경찰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격분해도, 사회의 규범이 흐트러지니까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 거라고 한탄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럴 때 적당히 빠져나갈 샛길을 만들어 낸다. 자신을 사건의 바깥에 두고, 그 사건에서 철저히 멀어지는 것이다. 또는 희생당한 여자를 폄하 하면서, 그런 무서운 사건에 휘말려든 것은 피해자들 쪽에도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신에게는 절대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보다 더 단순한 '망각'이라는 방법도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들은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2-57. 자신의 기분에 솔직한 것과 탐욕스럽고 성급한 것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2-57. 누군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 싶을 때 최고의 무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다. '동정'이야말로 마음을 파고드는 송곳이다.
2-178.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2-221. 젊은 여자 하나가 납치되어 죽으면, 세상은 표면적으로는 야단법석을 떤다. 그러나 속내도 과연 그러까? 살해당한 여자에 대한 이 세상의 동정 가운데 몇 퍼센트가 진짜일까? 그 가운데 적어도 20퍼센트는 말없이 그 여자를 조롱하고 있을 것이다.
2-226. 경제적인 여유는 마음의 여유와 직결된다.
2-230. 멀고 먼 옛 기억, 그러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가슴의 상처와 슬픔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2-254. 그 시점에서 자신의 사고가 다람쥐 쳇바튀 돌 듯 하고 있다은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다른 것이 보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2-287. 거짓말 하기는 쉽다. 문제는 그 거짓말을 늘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2-364. 어린 시절 자신이 왜 그런 시를 썼는지, 그것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말이었다. 작문의 사방에 널린 언어를 조합해서 만들 수 있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내시경을 넣고 거기에서 조직의 일부를 떼내 표본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2-398. 그래도 그들은 지금 자책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좋았을 텐데, 저렇게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향해 모든 구원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2-399. 아무리 분노하고 소리쳐도 그것이 남의 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2-406. 그녀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압도적인 지배력의 환희를 손쉽게 재생하고 음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재미있으니까.
2-407. 인간은 혼자서는 약하다. 범죄의 장소에서조차 혼자서는 약하다. 그러나 동료가 있으면 감정이 서로 공명하고 사고가 강화된다.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면서 미쳐가고 있었다.
2-436. 인간의 기억은 쉽게 변절되는 것이며 착각이나 선입견은 거짓말과는 달리 그 배경에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2-463. 흉악범의 가족이 당해야 하는 이차적인 피해는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어떤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2-465.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의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새.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어.
3-49. 얌전했다. 눈에 띄지 않았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만큼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3-67. 범죄심리학자가 연구하고 분석하고 축적해온 지식으로 대항할 수 있는 선례가 있는 일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3-68. 어떤 장소에서는 암담하게, 어떤 장소에서는 축복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환영하고, 새해를 기뻐했다. 많은 희생자를 낸 연속살인사건의 거억 따위는 ~ 덮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나면 그것을 다시 꺼내 화제로 삼으면 된다. 사건은 벌써 끝났다. 뒷정리는 그냥 내버려둬도 누군가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그것이 선진 문명국의 올바른 방식이다.
3-71. 그녀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신이치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신이치가 세계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로웠다.
3-71. 이렇게 해서 새해가 왔다. 시간의 화살 끝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3-104. 당신이 쓴 글을 붙잡고 사건에대히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인간들은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들뿐이지. 그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이 강 건너 불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거요.
3-105. 타인의 해설로 알 수 있는게 아니오. 놈들의 목소리로, 머리로 생각한 것을 듣고 싶은 거요. ~ 해설이란 건 아무리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도 합리적이라 해도. 어차피 이야기일 뿐이야. 만들어 낸 이야기.
3-130.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자신이 냉정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여유를 가졌다.
3-139.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역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다. 남 걱정하기 좋아하는 이런 천성은 지옥에 가도 벌리 수 없다.
3-166. 어떤 경우라도 눈앞에서 사람이 비판 받은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3-188. 행방불명은 사망 소식보다 고통스럽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고통도 커진다. 그러나, 끔찍한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솔직한 심리이다.
3--243. 범죄 수사란 범인이 저지른 실수를 찾아내는 직업이다. 범죄는 어렵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범죄자라도 단 하나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 법은 없다.
3-252. 주위 사람이 갑자기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일반인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고 익숙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 본인이나 유족은 그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게 당연합니다. 메뉴얼이 없으니까요. 악의를 품은 인간이 친절을 가장하고 접근해와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 늘 사기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263.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3-281. 운이 나빴다면 자신도 그 범인의 손에 걸려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전율하면서 뉴스를 바라보는 것과, 자신의 내면에 그런 폭력적인 부분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뉴스를 바라모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3-284. 가장 두려운 것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아무에게 주목 받지 못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인생을 보낼 바에야 죽는 편이 낫다는 그런 지향성..
3-301. 인간관계라는 것은 상황이나 국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이날은 우연히 다카이 가즈아키가 머리를 잘 굴려서 구리하시 히로미의 실수를 질책하고 멋들어지게 뒤처리까지 했는지도 모른다.
3-337.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순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감정은 속일 수 없었다.
3-354. 지극히 평범한 사실들 마저 신이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주위의 눈이란 그런 것이다. 진실이 자신에게 직접 닥쳐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핞는 한, 인간은 그것과 직면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안락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 해석을 '진실'로 채택하는 것 뿐이다.
3-367. 모든 논리와 이성적인 사고는 강렬한 감정 앞에서는 바람 앞의 낙엽과도 같았다.
3-501. 그 상처들이 두사람의 짐승 같은 범죄의 무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무의식이 개인적 삶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정신분석학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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